어릴 적 기억 속 목욕탕은 그 자체로 작은 여행이었습니다. 타일 바닥, 김이 서린 거울, 뜨거운 물이 철통에서 흐르던 풍경을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잊혔지만, 도시 곳곳에는 여전히 오래된 목욕탕이 남아 있는 골목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목욕’이 아닌, 시간을 체험하고 온기를 마주하는 감성 여행지로 재해석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래된 목욕탕이 있는 골목’ 4곳을 소개합니다. 온기, 기억,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남은 공간으로의 산책입니다.
1. 대구 중구 남산동 – '진골목탕'과 벽돌 골목
대구 남산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낮은 지붕, 벽돌 벽면, 한자 간판의 작은 목욕탕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진골목탕’. 50년 넘게 운영 중인 이 목욕탕은 기계식 코인 보일러와 목욕줄서기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 주변 골목은 조용하고 좁은 길이 이어지며 중간중간 옛 사진관, 만화방, 이발소가 남아 있어 전체가 하나의 복고 세트장 같습니다. 목욕탕 내부엔 하늘색 타일, 분홍 플라스틱 대야, 자리를 잡고 담소 나누는 단골손님들. 이 공간은 목욕이라기보다 '일상의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골목 안 밀면집에서 후루룩 밀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정리해 보세요. 따뜻한 물과 온 음식, 조용한 골목. 이 삼박자가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2. 전북 군산 중앙로 – '대우탕'과 일제시대 흔적
군산 중앙로 골목 어귀, 아직도 검은 타일 간판이 남아 있는 '대우탕'은 군산의 오랜 생활유산 중 하나입니다. 목욕탕 외관은 낡은 콘크리트지만 내부는 고전적인 흰 타일 벽, 높고 좁은 욕조, 수증기로 가득한 대형 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골목 자체가 감성 포인트입니다. 바로 옆에는 일제시대 적산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인근에는 60년 된 구두수선소, 다방, 전통시장도 남아 있어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거꾸로 흐릅니다. 대우탕에서 목욕 후, 5분 거리의 초원사진관에 들러 흑백사진 한 장 남기면 그 하루는 아예 흑백필름처럼 기억에 남게 됩니다.
3. 충북 제천 명동 – '동광탕'과 스낵골목
충북 제천 명동 골목 안쪽에는 이름 그대로 ‘빛을 전하는’ ‘동광탕’이 있습니다. 1970년대 지어진 이곳은 작고 따뜻하고, 사람이 많은 목욕탕입니다. 온탕 하나, 냉탕 하나. 가끔은 물이 넘치기도 하고, 수증기가 너무 많아 거울이 안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엔 고단한 하루를 녹이는 사람들의 숨결이 가득합니다. 골목 주변에는 토스트 노점, 떡볶이 가게, 500원 뽑기 기계가 남아 있는 ‘스낵 골목’이 있어 목욕 후 간식까지 감성으로 이어집니다. 동광탕은 관광지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따뜻한 공간입니다. 제천 여행 중 하루쯤은 이곳에서 피부가 아니라 마음을 씻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4. 부산 영도 청학동 – '보림탕'과 항구의 습기
부산 영도의 청학동 골목에는 아직도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보림탕이 있습니다. 항구 노동자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던 이 목욕탕은 5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소금기 섞인 땀을 씻겨왔습니다. 타일 바닥은 미끄럽고, 문짝은 덜컥거리지만 뜨끈한 물에서 온몸을 담그고 있을 때 ‘그래도 살아있다’는 감각이 몰려옵니다. 목욕 후엔 항구 끝 찐빵집에서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세요. 영도의 바람과 목욕탕의 온기가 하나의 장면처럼 어우러집니다.
📋 오래된 목욕탕 골목 요약표
지역 | 목욕탕 이름 | 주변 특징 | 느낌 키워드 |
---|---|---|---|
대구 남산동 | 진골목탕 | 벽돌골목, 만화방, 밀면 | 복고, 사람 냄새 |
전북 군산 | 대우탕 | 적산가옥, 시장, 흑백사진 | 과거 시간 여행 |
충북 제천 | 동광탕 | 스낵골목, 떡볶이 | 작은 온기, 소박함 |
부산 영도 | 보림탕 | 항구, 찐빵집, 바다 | 습기, 노동의 휴식 |
결론: 물은 흘러도, 기억은 남는다
목욕은 그저 씻는 일이지만 오래된 목욕탕에서의 시간은 삶을 정리하는 감정의 의식이 됩니다. 수증기와 타일 사이를 걷는 순간, 그 골목을 돌아 나올 때 마치 한 시대를 짧게 여행한 기분이 듭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힐링은 온천이 아닌, 아직 연기가 나는 오래된 목욕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