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문엔 김이 서려 있고, 유리문 위엔 파란색 글씨로 "○○세탁소"라고 쓰여 있으며, 안에서는 다림질 소리와 함께 라디오가 조용히 울리는 풍경인데요. 오늘날에는 세탁기가 집마다 있지만, 한때 세탁소는 마을 사람들의 속옷과 셔츠, 그리고 속마음까지 빨아주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은 골목 어귀마다 남아 있고, 그곳엔 간판, 타일, 물의 냄새가 살아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옛날 세탁소 간판을 따라 걷는 골목 산책’을 떠납니다. 전북 익산, 경남 밀양, 충남 태안. 이 세 도시의 골목 안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남아 있는 세탁소가 지금도 숨 쉬고 있습니다.
1. 전북 익산 – 역전 골목의 파란 간판들
익산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옛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골목을 걷다 보면 ‘미○세탁소’, ‘삼○세탁’ 같은 파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세탁소들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지어졌고, 타일로 된 출입구, 목제문, 유리창 아래 손빨래터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문을 열고 다림질을 하고 있는 곳도 있고, 문이 닫혔지만 세탁소 특유의 간판·온수기 배관·환기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도 많습니다. 특히 어떤 세탁소는 ‘전기다림’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인 세로 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어 골목 전체가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익산의 골목은 번화하진 않지만, 하나의 간판이 도시의 시대를 말해주는 곳입니다. 세탁소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산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왔는지를 천천히 이해하게 됩니다.
2. 경남 밀양 – 장날이면 더 살아나는 골목 풍경
밀양시는 시장 골목이 도시 중심이던 곳입니다. 그 안에는 지금도 운영 중인 세탁소들이 남아 있고, 간판 색이 바랜 채 살아 있는 '온기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밀양 아리랑시장 뒷골목에는 예전 빨래터 구조를 갖춘 세탁소들이 여럿 남아 있으며, 벽엔 하늘색 타일이 박혀 있고, 창문 너머로 스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한 세탁소 사장님은 “여긴 기계 돌리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마음 편해요.”라며 지금도 수건과 와이셔츠를 손으로 주무르며 말합니다. 밀양 골목의 매력은 운영 중인 세탁소와 닫힌 세탁소가 나란히 공존하는 데 있습니다. 그중엔 상가로 바뀐 곳도 있고, 입구 간판만 남아 바람에 흔들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 모습은 ‘사라짐’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조용한 상태’로 느껴집니다.
3. 충남 태안 – 바다 마을에 남은 타일 세탁소
태안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골목에는 ‘해○세탁’, ‘○○정 세탁소’처럼 소규모 세탁소 간판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여기서 특징적인 건, 대부분의 세탁소 입구 바닥이 푸른색·흰색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곳의 타일은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라, 빨래가 끝난 뒤 바닥에 물을 흘리고 바람을 맞으며 말리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세탁소 벽엔 여전히 스테인리스 스팀다리미가 꽂혀 있고, ‘손빨래받습니다’라는 문구가 아크릴판으로 붙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골목은 세탁소가 폐점했지만 여전히 온수기 배관이 건물 외벽을 타고 흘러갑니다. 그 모습은 마치 그 마을의 ‘생활의 흔적’을 간직한 문신처럼 보입니다. 태안의 골목은 바닷바람에 간판이 더 빠르게 바래기도 하지만, 바람과 물의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 세탁소 골목 산책 요약표
지역 | 핵심 포인트 | 특징 | 분위기 요약 |
---|---|---|---|
익산 | 역전 세탁소 골목 | 파란 간판, 전기다림, 유리문 | 시간 정지된 간판 도시 |
밀양 | 시장 골목 세탁소 | 하늘색 타일, 손빨래터 | 현재와 과거의 공존 |
태안 | 시외터미널 뒷골목 | 온수기 배관, 타일 출입구 | 생활의 문신 같은 흔적 |
결론
세탁소는 단지 옷을 빠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일상과 동네가 함께 숨 쉬던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남은 간판일지라도, 그 골목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포토존보다 문구가 흐릿한 세탁소 간판 하나를 찾아보세요. 그곳엔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시절의 흔적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