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여행의 계절이지만, 햇살이 강하고 사람도 많아 낮엔 쉽게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바람이 달라집니다. 햇살이 사라지고, 도심의 소음도 줄어들고, 차창 밖으로는 시원한 공기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흘러갑니다. 그 감성을 따라 차 한 대, 음악 한 곡, 그리고 도로 위 바람만 있다면 그 자체로 여행이 되는 시간. 이번 글에서는 선선한 해안도로, 별 보기 좋은 길, 그리고 여름밤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드라이브 코스 5곳을 소개합니다.
전남 고흥 녹동~남열 해안도로 – 선선한 해안도로의 해풍과 불빛, 음악의 조합
전라남도 고흥은 여름밤 드라이브 명소 중 손꼽히는 곳입니다. 특히 녹동항에서 시작해 남열해돋이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시속 40~50km로 천천히 달릴수록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도로는 좁지만 잘 포장돼 있고, 곁에는 굽이치는 바다와 소박한 어촌마을이 이어집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바다 냄새, 해풍, 가로등 불빛, 그리고 멀리 낚싯배 불빛이 배경처럼 흐릅니다. 이 구간 중간에는 동녘 전망대, 남열해돋이쉼터, 그리고 작고 아늑한 무인 카페들이 숨어 있어 1~2회 정차하며 바다를 바라보기에 좋습니다. 혼자 달려도, 둘이 함께여도 조용히 말없이 음악만 틀고 싶은 길이죠.
강원 양양 7번 국도 – 별 보기 좋은 코스 한밤의 바닷길
강원도 양양~강릉~주문진 구간의 7번 국도는 ‘낮보다 밤에 더 예쁜 길’로 알려진 코스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 도로는 도심 조명이 적어 별빛과 함께 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안도로입니다. 특히 양양의 지경리 해변, 강릉의 강문해변과 안목해변, 주문진의 등대 앞 쉼터는 밤에도 정차가 가능하고 바다 위 별빛 반사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구간 전체가 약 40km 남짓이며, 1시간~1시간 반 정도 소요되므로 천천히 음악을 틀고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거리입니다. 추천 음악은 재즈풍 인스트루멘탈이나 기타 중심의 로우파이 사운드. 별이 깜빡이는 도로에 너무 말이 많으면 풍경이 묻히니까요.
충남 태안 안면도 – 모래사장을 걷는 여름밤
서울에서 2~3시간 내외, 안면도~백사장항~삼봉해변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야경보다는 밤공기와 바다내음, 그리고 조용한 도로의 리듬감이 중심입니다. 이곳은 밤 9시 이후부터 차가 줄고, 해수욕장도 자연스럽게 정적이 깔립니다. 해변 도로에는 소형 벤치, 모래 언덕, 조명 없는 구간들이 있어 차를 세우고 잠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여름이라는 사실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잊게 되죠. 삼봉해변 근처에는 밤 11시까지 운영하는 카페도 있고, 불빛 하나 없는 구간도 있어 별구경도 가능합니다. 단, 도로에 가로등이 적고 길이 좁은 편이니 속도를 줄이고 조심히 운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제주 애월~협재 밤길 –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좋은 길
제주의 낮은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하지만 밤엔 그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바람만이 창밖을 스칩니다. 애월~곽지~협재 구간의 해안도로는 자차 또는 렌터카 이용자들에게 ‘하차 없이도 감성 채우는 드라이브’로 유명합니다. 특히 한담해변 옆을 지나는 순간,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닷바람이 실내로 스며들고, 차창 밖에 번지는 조용한 제주 가로등 불빛이 감정을 묵직하게 만들죠. 이 구간에는 밤 10시까지 여는 카페, 야경 포인트, 전망 데크가 다양하게 있어 마음이 내키는 곳에서 내려 별을 봐도 좋고 그냥 계속 달려도 좋습니다.
경북 경주 보문호~문무대왕릉 – 밤 호수와 바다를 잇는 코스
‘여름밤’ 하면 바다만 떠오르지만 호수와 바다를 연결하는 드라이브도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경주 보문호에서 시작해 감포항~문무대왕릉 해안도로까지 잇는 이 코스는 조용한 호수 풍경 + 바다 야경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보문호는 밤에도 일부 산책로에 조명이 들어와 차 안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쉬기에 좋고, 이후 20~30분 정도 이동하면 동해 바다로 이어지는 감포~문무대왕릉 해안도로가 펼쳐집니다. 이곳은 관광객이 적고 도로가 넓어 운전이 편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돋보입니다. 달빛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감포항 부두에서 잠시 멈춰 있는 것만으로도 ‘여름밤 드라이브의 끝’이라 느껴질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무리
낮보다 조용하고, 햇살보다 부드럽고, 사람보다 바람과 음악이 함께하는 시간. 그게 여름밤 드라이브의 진짜 매력입니다.
복잡한 일정 없이, 차 한 대, 좋아하는 음악, 적당한 동행자만 있다면 어떤 도시든 여름밤은 가장 깊은 감성의 시간이 됩니다.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 밤, 이번 주말엔 무작정 떠나보세요. 바람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