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카페 체인점이 아닌, 수십 년째 한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다방.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과 주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전히 다방 문화가 살아있는 세 곳의 작은 도시를 소개합니다.

1. 보성 - 녹차밭 아래 옛 다방의 정취
전라남도 보성읍 중심가에는 1960-70년대 문을 연 다방들이 아직도 영업 중입니다. 보성다방과 녹차다방이 대표적이며, 낡은 간판과 오래된 건물이 세월을 말해줍니다. 특히 보성다방은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다방 내부로 들어서면 19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낡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 벽에 걸린 오래된 시계, 구석에 놓인 턴테이블. 주인 할아버지는 사이펀으로 직접 커피를 내려주며, 그 모습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입니다. 진한 커피 향이 다방 안을 가득 채우고, 라디오에서는 옛날 가요가 흘러나옵니다.
보성 다방의 특별함은 녹차를 활용한 메뉴입니다. 녹차라테, 녹차빙수, 녹차케이크 등이 인기이며, 보성의 신선한 녹차를 사용합니다. 단골 어르신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해 신문을 읽고, 친구들과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젊은 여행객들에게는 낯설지만 신기한 풍경이고,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입니다.
보성읍 주변으로는 재래시장과 오래된 상가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방에서 나와 시장을 둘러보면 꼬막과 벌교 참꼬막을 파는 가게들이 많고, 보성 녹차를 판매하는 상점도 즐비합니다. 읍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는 보성녹차밭이 있어, 다방 여행과 녹차밭 관광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추천 코스: 다방 → 보성시장 → 녹차밭 → 율포해수욕장 (소요 시간 4-5시간)
2. 김천 - 경부선 철길 옆 추억의 다방 거리
경상북도 김천역 앞 상가에는 옛 다방들이 모여 있습니다. 1970-80년대 김천은 경부선 철도의 주요 정차역으로 번성했고, 역 앞에는 다방과 여관, 식당들이 즐비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금성다방과 역전다방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있습니다.
금성다방은 1968년 개업한 김천 최고령 다방입니다. 2층 건물의 1층에 위치하며, 입구에는 '다방'이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아직도 켜집니다. 내부는 어두운 조명과 붉은 소파가 인상적이며, 벽에는 오래된 가수들의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60년 가까이 이곳을 지키며 단골손님들을 맞이합니다.
다방에서 주문하면 커피와 함께 다과가 나옵니다. 옛날 과자와 땅콩, 건포도가 담긴 작은 접시가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상인들과 회사원들이 찾아와 인스턴트커피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눕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이것이 바로 한국 다방 문화의 진짜 모습입니다.
김천역 주변에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습니다. 낡은 여관과 이발소, 철물점들이 줄지어 있어 1970년대 소도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 건너편에는 김천시장이 있어, 다방 구경 후 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로 허기를 채울 수 있습니다. 김천은 포도와 자두로 유명하니 과일도 꼭 맛보세요.
추천 시간: 평일 오후 2-5시 조용한 분위기 / 주차: 역 앞 공영주차장 이용
3. 상주 - 곶감 익어가는 시골의 다방 정취
경상북도 상주시 중앙시장 근처에는 백록다방과 중앙다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주는 곶감과 쌀, 누에고치로 유명한 농업 도시였고, 1960-70년대에는 농산물 거래로 번성했습니다. 당시 상인들이 모여 거래하고 쉬던 곳이 바로 이 다방들이었습니다.
백록다방은 1965년 개업한 곳으로, 상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입니다. 건물 자체가 한옥과 근대 건축이 혼합된 구조로, 문화재적 가치도 있습니다. 천장이 높고 창문이 커서 햇살이 잘 들어오는 밝은 분위기입니다. 주인아주머니는 40년 넘게 이곳을 운영하며, 상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방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요즘 스페셜티 커피와는 다르지만,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 한 잔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단골 어르신들은 아침부터 다방에 앉아 신문을 읽고 바둑을 두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벽에는 오래된 달력과 상주 풍경 사진들이 걸려있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상주는 곶감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방문하면, 집집마다 곶감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다방 근처 시장에서는 신선한 곶감과 말린 곶감을 판매하며, 커피와 곶감의 조합은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상주시장의 시장 국밥과 육회도 별미입니다.
추천 시기: 10-12월 곶감 철 / 연계 관광: 경천대, 상주 자전거 박물관 / 특산물: 상주 곶감
낡은 다방 여행의 의미
오래된 다방은 단순한 커피 전문점이 아닌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상인들이 모여 거래하고, 친구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연인들이 데이트하던 장소였습니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에는 다방 전화를 빌려 쓰기도 했고, 중요한 소식은 다방에서 전해졌습니다. 그만큼 다방은 지역 사회의 소통 창구였습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카페가 늘어나면서 다방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 젊은이들이 찾지 않으니 장사도 안 됩니다. 남아있는 다방들은 대부분 단골 어르신들 덕분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다방들은 더욱 소중합니다.
낡은 다방을 방문하는 것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입니다. 오래된 인테리어, 사이펀 커피, 옛날 가요, 단골 어르신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솔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따뜻한 그런 공간입니다.
다방 방문 에티켓:
- 조용히 대화하고 사진 촬영 시 허락받기
- 주인과 단골손님들 존중하기
- 최소 음료 한 잔 주문하기
- 오랜 시간 자리 차지하지 않기
보성, 김천, 상주. 세 곳의 작은 도시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다방들이 있습니다. 다음 여행은 화려한 카페 대신 낡은 다방을 찾아가 보세요. 추억과 향수, 그리고 진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