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많지만 다방은 점점 사라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방은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의 기억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커피는 여전하고, 벽엔 오래된 시계가 똑딱거리고, 테이블 위에는 옛날 꽃무늬 찻잔과 라디오 소리가 흐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도 문을 열고 있는 낡은 다방이 남아 있는 세 도시, 보성, 김천, 상주를 소개합니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레트로 카페’가 아닌, 한 세대의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억의 장소입니다.
1. 전남 보성 – 녹차 향을 지나 만나는 진짜 다방
보성 하면 흔히 녹차밭을 떠올리지만, 보성읍 중심지에는 다른 시간대의 공간이 숨어 있습니다. 구 읍내 거리 한쪽, 다소 낡은 간판에 “청○다방” 혹은 “○○레코드다방”이라 쓰인 공간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진공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벽에 걸린 오래된 LP판, 알록달록한 꽃무늬 잔에 담긴 연한 믹스 커피가 눈과 귀를 먼저 붙잡습니다. 의자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무거운 나무 프레임이고, 테이블 유리 아래엔 신문 기사, 엽서, 낡은 명함들이 깔려 있습니다. 마치 다방 그 자체가 한 권의 앨범처럼 보입니다. 한쪽 구석에는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 오래된 전기포트와 레코드판을 번갈아 만지고 있고, 라디오는 낮은 볼륨으로 클래식 FM을 틀고 있습니다. 이곳의 손님은 대부분 단골 어르신들이지만, 젊은 여행객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하면 그들에게도 말없이 따뜻한 시간을 내어줍니다. 보성의 다방은 관광지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과 감정이 더 오래 머무는 곳입니다.
2. 경북 김천 – 평화시장 골목, 다방의 숨은 맥박
경북 김천 평화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거리 양 옆으로 식당, 이발소, 다방이 함께 숨 쉬는 골목이 펼쳐집니다. 그중에서도 “은○다방”, “로얄○○” 같은 다방들은 50대 이상의 단골손님들이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커피를 마시는 ‘일상의 순례지’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라디오에서 트로트나 클래식 팝이 흐르고, 테이블 위에는 고전 무늬 찻잔과 하얀 크래커 접시가 놓여 있습니다. 커피는 뜨겁고 달달하며, 말 한마디 없이도 공간 전체가 정해진 감정의 리듬으로 돌아갑니다. 한쪽 벽에는 카세트 데크가, 천장엔 조명 대신 벽걸이형 선풍기와 옛날 시계가 돌아갑니다. 다방을 지키는 사장님은 커피를 내리며 말합니다. “이 다방이 닫히면, 누군가는 하루를 보낼 데가 없어져요.” 김천의 다방은 단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감정을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여행자는 그곳에서 낯선 듯, 낯설지 않은 평온을 얻게 됩니다.
3. 경북 상주 – 남성동 구도심, 여전히 열려 있는 시간
상주 남성동은 과거 버스터미널, 병원, 군부대가 있던 소도시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동네입니다. 지금은 다소 조용해졌지만 그 골목 어귀에는 아직도 “복○다방”, “○○다실” 같은 이름이 붙은 실제 운영 중인 다방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문을 열면 열선 들어간 얇은 방석과 전기 포트가 놓인 나무 테이블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 작은 종지에 담긴 잼 크래커, 미니 견과류, 그리고 달달한 커피가 1970년대 찻잔에 담겨 나옵니다. 주인장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분들로, 가게 한쪽에선 라디오를 들으며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고 계십니다. 상주의 다방은 사진을 찍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말없이 앉아 있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주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 앉아 있으면 밖의 햇살과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내 안의 감정이 고요하게 정리됩니다.
📋 낡은 다방 여행 요약표
지역 | 다방 위치 | 공간 요소 | 분위기 요약 |
---|---|---|---|
전남 보성 | 구읍내 중심가 | 진공관, LP, 유리 테이블 | 정적인 음악, 감성의 온기 |
경북 김천 | 평화시장 인근 | 신문, 카세트, 찻잔세트 | 정겨운 일상, 단골 중심 |
경북 상주 | 남성동 구도심 | 쨈 크래커, 바느질, 라디오 | 침묵의 위로, 조용한 대화 |
결론
낡은 다방은 단순히 '옛날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말보다 마음이 먼저 머무는 장소입니다. 커피 한 잔은 특별할 게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 향, 말의 공백, 그리고 소리 없는 공감은 그 어떤 최신 카페보다 진하고 오래 남는 감정을 줍니다. 여행지에서 가장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낡은 다방을 찾아가 보세요. 그곳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오늘을 건네주는 중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