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행은 너무 ‘계획적’입니다. 숙소 예약, 맛집 체크, 카페 리스트까지 미리 다 정리한 다음에야 출발 버튼을 누르는 게 일반적이죠. 그만큼 실수는 줄겠지만, 반대로 즉흥적인 순간의 매력은 사라지기 쉽습니다. 저는 어느 날, 그런 계획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번엔 아무 계획 없이 가보자’고 마음먹고, 그냥 동쪽을 향해 운전대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강원도 고성에서 양양, 그리고 낙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였습니다. 그저 바람 따라 흘러간 루트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여정은 ‘가장 내 시간 같았던 여행’이었습니다.
1. 출발은 ‘일단 동쪽’, 목적지는 없어도 충분하다
서울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속초’가 떠올랐지만, “너무 붐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비게이션을 껐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속초가 아닌 그 아래, 눈에 익은 이름이 아니라 낯선 지명을 따라 달렸고, 그렇게 도착한 건 고성의 작은 해변 도로였습니다. 정해진 시간도, 약속도, 도착지도 없었기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해변 옆에 작은 포장마차가 있었고, 아주머니가 썰고 있던 오징어 향이 바닷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았습니다. 제가 물었죠. “여기 뭐가 좋나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답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좋아.” 그 한마디에, 그날의 루트는 목적지를 가진 여행보다 훨씬 선명하게 각인됐습니다. 계획이 없으니 풍경이 더 정확히 보였고, 의무감이 없으니 감정이 더 깊어졌습니다.
2. 검색어도 없고 위치도 애매한 카페에서 느낀 편안함
다시 차를 몰고 양양 방향으로 내려오던 중, 현북면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허름한 간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는, SNS에도 없는 카페. 당연히 궁금해졌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목제 테이블 두 개, 창가 자리,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잔잔한 동해.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이 가게 이름이 뭐예요?” “없어요. 검색어 타는 거 싫어서요.” 그 대답이 그렇게 부럽고, 멋있고, 자유롭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커피 맛이 특별했는지보다, 공간과 시간의 공기가 편안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사람이 없었기에 사장님과 대화도 길게 할 수 있었고, 계획이 없었기에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그 카페는 지도엔 없지만 제 기억엔 가장 진하게 남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관광지가 아닌 곳, 유명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여유가 오히려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음을 느끼게 해 줬죠.
3. 숙소는 저녁 6시에 정했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계획 없는 여행에서 가장 고민되는 건 숙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하루의 기분에 따라 잠자리를 고르고 싶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지도를 켜서 ‘근처 숙소’만 검색했고, 낙산 근처 작은 모텔을 선택했습니다. 아담했고, 창밖엔 바다가 보이진 않았지만 조용한 주택가의 바람과 조명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은 숙소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실 여행의 본질은 ‘머문 시간의 질’입니다. 예약하지 않았기에 ‘이걸 꼭 이용해야 해’라는 압박도 없었고, 있던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 근처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산책로를 걸으며 별을 봤습니다. 계획했다면 절대 없었을 장면들이었죠.
4. 다음 날 아침, 어느 벤치에서 다시 느낀 ‘여행의 정의’
아침이 밝고, 다시 차를 몰기 전 낙산 해변으로 걸었습니다. 일찍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파도 소리와 갓 볶은 커피 향만이 공기 사이를 맴돌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이란 건, 내가 나한테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구나.” 보여주기 위한 일정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 내가 쉬고 싶은 리듬으로 하루를 조절할 수 있는 것. 그게 진짜 여행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론: 무계획 여행을 위한 현실적 조언과 추천
무계획 여행은 모든 걸 버리는 게 아니라, 순간을 수용하는 감각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이 여정에서 제가 얻은 건 이런 것들입니다:
- 정해진 목적지가 없으니, 모든 풍경이 목적지가 된다.
- 유명하지 않은 장소에서 진짜 여행의 감정이 태어난다.
- 숙소는 여정을 따를 때 더 자연스럽다.
- 일정은 비어 있었지만, 마음은 꽉 차 있었다.
🧭 추천 루트 요약:
서울 → 고성(해변 포장마차) → 양양(무명 카페) → 낙산(즉흥 숙소) → 낙산 해변 산책
다음 여행, 계획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스트레스라면 이번 루트를 참고해 ‘비워둔 시간의 여행’을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